1인당 GDP 그래프 및 기간 구분에 따른 해석의 차이



1인당 GDP를 계산하면 당연히 한 1% 정도 이상 낮아집니다. 인구가 1% 이상 증가하던 시절이니 당연하겠죠.

이건 아시아 각국의 경제성장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실 이런건 기간을 어떻게 잡아서 비교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값을 낼수 있어서 딱부러지게 말을 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저는 일본과 대만이 조금이라도 성장하는데 비해서 조선이 별로 성장하지 않는게 눈에 띄는군요. 심지어 대만의 경우 세계 불황의 직격탄 마저 덜 맞은 것으로 보입니다. 1921년의 급격한 하락 이후의 빠른 성장이라는 면에서 보아도, 조선과 대만, 일본이 차이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래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아마도 1910년대의 기울기가 이 그림이 보여주는 것에 비하면 많이 작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될 것 같습니다.

저 점선 부분입니다.

그리고 국가간 비교에 대해서도 또 다른 말을 할수도 있죠.

대공황 이전 시절까지만 본 겁니다. 인도네시아는 일본 식민지가 아니었죠. 저것만 보면 일본의 식민지가 아닌 국가인 인도네시아가 훨씬 안정되게(최소한 조선에 비해서) 발전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 할겁니다. 조선의 발전은? 전형적인 버블. 그리고 버블 이후의 공황기. 인도네시아는 꾸준한 발전.

낙성대 연구소의 여러 발표들은 꾸줂이 1940년대까지의 자료 - 총독부가 자료를 작성한때가 그때까지니까 현실적인 문제겠죠 - 를 바탕으로 GDP 성장률을 계산합니다. 저는 그분들의 작업을 높이 평가합니다만, 그러나 GDP 성장률에 있어서 어떤 기간을 설정한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가령 저는 이 그래프를 보고 대공황 직전까지는 식민지들이 성장하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었는데(성장하는 경우 일본의 식민지만 특히 그러했던건 아니라는 근거로 인도네시아를 들면서.) 그 이후로 일본의 전시 버블이든 강제적인 경기부양이든 그런것을 통해서 일본의 식민지들은 대규모 경제 성장을 이룩하다가 전쟁에서 패전하면서 전시 버블이 완전히 가라앉아서 경제가 1910년대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렇게 해석을 할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해석이 일반적인 GDP 성장률 해석이랑 큰 차이가 나는 스타일의 해석이 아닙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제시대의 경제성장의 핵심은 '전시 버블'이 되는 거겠죠. 일반적인 식근론과 이 해석의 뉘앙스의 차이를 금방 짐작하실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시버블이 '긍정적 의미에서의 근대적 현상'이라고는 할수 없겠죠.

연도를 어떻게 끊어서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가 왜 중요한지 이해하셨다면, 제가 1940년대까지의 경제성장을 논한 낙성대 연구소 분들에 대해서 느끼는 약간의 배신감(?)도 이해하실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료가 더 이상은 없으니 어쩔수 없으셨겠지만, 그분들은 우연히 최고의 피크 - 아마도 버블의 끝까지 합쳐서 - 를 찍어서 경제 성장률을 예산하셨고, 그나마도 시작점이 되는 1910년대의 자료는 일정정도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 세계에 비해서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던 경제성장률이라는 개념은, 그 차이가 없어지지야 않겠지만 많이 축소될 거라고 있습니다. 특히 인도네시아와의 비교를 보고 있으면, 1929년 대공황 이전으로 끊으면 도대체 누가 더 잘 발전하고 있었던 걸까,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수 없는 것이죠.

나츠메님은 '우리도 잘 할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역사적 가정'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그러나 근본 경제학적인 모든 비교는 그 '역사적 가정'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가정을 하지 않으려면 애초에 '비교'라는걸 하지 않아야 하는거 아닐까요? 모든 비교는 '우리는 저길로 가지 않았다 - 저길로 갔어야 했다 - 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으로서, 순수하게 '현상의 기술'로서의 근대 - 이녁님은 이걸 식민지근대론이라고 말씀하신듯 한데 맞나요. - 를 논하는게 아니라면 모든 비교는 역사적 가정입니다. 적어도 경제학에서의 모든 비교는 그렇고, 그 방법론을 차용한 낙성대 연구소의 연구기법 역시 근본 역사적 가정에 기반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알기에는 그렇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우리는 저 길로 가지 않았는데요. 가령 영국 식민지와의 비교는 '우리가 영국의 식민지 였다면'을 가정하는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과거와 비교하는 것은 '과거대로 계속 했다면..'이라는 것을 가정하는것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아는 '가정'이라는 개념과 역사학에서 쓰는 '역사적 가정'이라는 개념이 다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군요.

실제 경제사학자들은 이런류의 연구를 싫어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고 반복불가능의 것인데, 경제학적 비교, 모델링은 모두 반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서로를 비교하지요. 경제사학자들의 그러한 지적은 분명히 맞는 것입니다만 - 특히 한쪽에서 성공한 것이 한쪽에서 실패하는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는걸 생각해 보면 경제학적 관점의 반복 가능성에 대해서 회의가 드는 것도 어쩔수 없습니다. - 비교하지 않고는 무언가를 논할수 없는게 인간의 한계인것도 인정할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물론 저는 전공이 역사학이 아니라 화학 + 경제학이라서 그런지 비교, 반복, 이 두가지가 머릿속에 박혀 있어서 역사학의 방법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렇지만, '역사적 가정'이라는 관점을 갖지 않고 어떻게 비교라는 것을 할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덧글

  • 갈매기 2009/01/17 10:36 # 삭제 답글

    마지막 2 문단에 동감합니다.
    박정희 논쟁떄도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더군요.;;


  • 2009/01/17 10:3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행인1 2009/01/17 11:55 # 답글

    안 그래도 방금 크루그먼의 책[경제학의 향연]을 읽어보았는데 거기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레이건 시절 경제를 해석하는 아주 기상천외한 방법이 하나 소개 되어 있어 참 놀랐습니다.(무려 임기 첫해는 빼버린다는... 왜? 카터 실정의 영향이 있으니까.)
  • 산마로 2009/01/17 12:10 # 삭제 답글

    1910년대의 그래프를 저렇게 점선으로 고쳐 그릴 수 있다는 가정에 의문이 있습니다. 1910년대의 그래프가 부정확하더라도 다른 자료가 없고 교차확인되는 다른 증거(일본과 대만의 경기)가 있다면 주어진 통계를 의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1920년대의 일본,대만과의 약간의 차이를 근거로 1910년대에도 똑같은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고 보기에는 20년대 이후의 그래프의 차이가 일관되게 같은 패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도리어 1910년대에 조선은 일본과 완전히 통합되므로 경제성장의 이유를 시장의 규모 확대에서 찾는 스프린터님의 입장에서는 1910년대에 빠른 성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정치적 안정과 제도 개혁, 일본 자본 유입 등의 영향으로 20년대보다 빠른 성장을 보일 이유는 충분하고 말입니다.
  • sprinter 2009/01/17 18:01 #

    교차확인되는 증거에 대해서는 제가 다른 해석을 하나 붙일 생각입니다. 산마로님의 논리대로라면 1910년대에 아주 통합이 잘 되었던 일본과 조선이 1920년대에 오면 통합의 정도가 약해진다고 해야 하는데, 사실 그 부분이 해석이 안되서 제가 이러고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 나츠메 2009/01/17 15:55 # 답글

    스프린터 님/
    1. 1910년대의 토지 센서스야 토지조사사업과 그 이전 제반 작업으로 10년대 중반이면 어느정도 파악 가능했겠으나, 인구 센서스의 경우는 제대로 파악이 안되었지요.

    1910년대의 자료가 과장일 가능성에 언급을 하셨는데, 이것은 낙성대 연구소가 이미 지적을 했습니다. 낙성대 연구소는 10년대의 인구 센서스의 과소평가에 대해 언급하고, "그것을 고려하여" 추계를 냈다고 <<한국의 경제성장>>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허수열 선생만 10년대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니지요.)

    2. 40년대의 경우가 없어서 안타까운 것은 저 역시 마찬가지이나, 자료 부족인 점은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3. 각 학문의 특성 상 가정이 필요할 수도 있겠으나, 역사적 가정이 횡횡한 한국 사학이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보여주려고 하기보다는 민족적 명분론, 혹은 민족적 내러티브로 흘러간 점을 생각한다면, 저는 그대지 역사적 가정에 찬성할 수 없네요. <일제 식민지가 아니었어도 우리가 해낼 수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역사학의 관심이 아니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역사학은 <식민지 때 성취한 것이 무엇이었나> 그리고 <그 성취가 이후 대한민국과 얼마나 "연결"되고 "단절"되었나>를 보는 것, 즉 당시 있었던 사실(실증주의)의 재현에 힘써야 한다고 봅니다.
  • sprinter 2009/01/17 18:12 #

    나츠메 /

    1. 1번의 문제에 대한 답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보정했는지를 알면 제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좀 바뀔수도 있겠죠.

    2. 자료 부족인 점은 이해해야 합니다만, 그러나 그것을 바탕으로 경제성장률을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태도라고 말씀드릴수 있을것 같습니다. 자료가 한계인건 한계인걸로 인정하고 그게 맞춰서 자료를 논하는게 맞겠죠.

    3. 저도 민족적 내러티브, 민족적 명분론을 지향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당시에 실제 민족적 개념으로 경제를 바라볼 가망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요.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대신 그러려면 비교라는걸 안하는 방식으로 가야 하는데, 적어도 낙성대 연구소의 연구자분들이 그렇게 까지 학문적으로 엄밀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 논쟁이 되는 식민지근대론의 경우, 명백히 역사학적인 방법론보다는 경제학적인 방법론 - 주로 비교와 가정에 의존하는 - 을 차용해 왔습니다. 그것이 그분들의 가치를 더 깎아 먹지는 않겠지만, 대신 마찬가지로 비교와 가정에 기반한 반론들을 받지 않을수는 없을 것입니다. 수탈론이나 기타 다른 논리들이 다양한 비교에 기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식근론도 그렇게 갈 필요는 없었겠죠. 그렇지만, 식근론이 나중에 어떻게 변하든지, 기본적으로 그분들이 제시한 자료와 수치에 근거한 일련의 논리들은 그 자체로 살아 남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게 실증주의의 강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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