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TV판 정주행 Evangelion

와이프를 간병하다 보면 와이프는 지쳐서 자고있으나 저는 잘수 없는 상황들이 종종 있습니다. 원래 이렇게 정주행하려고 했던건 아니었지만 - 원래 와이프는 28일에 유도분만을 하기로 되어 있었고, 저는 처가에 25일부터 가 있을 예정이었으므로, 25~28일 사이에 감상하려고 했었죠. - 어쩌다고 보니 에바 리뉴얼판을 지금 거의 정주행을 끝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리뉴얼판은, 첫 정주행인것도 아니지만, 좀 애매하군요. TV판에서는 저렇게 까지 이야기가 풍성하지는 않았죠^^;;;

어쨌든 저의 개인적인 소감을 이야기 하라면, 딱 하나입니다.



신 극장판 보다 재미있잖아!!!'

아 물론 액션의 화려함등등은 비교도 되지 않겠지요. 신극장판의 압승일 것입니다. 서에서의 그 야시마작전이라든지, 파에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그 사도를 받아내는 장면등은 분명히 '돈이 업성' 시절의 안노와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옙. 그렇습니다만...


극장판은 평범합니다.

너무 평범해요.


무엇보다, 에바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 고독과 절망에 대한 내용이 너무나 없습니다. 신지든 아스카든 마찬가지에요. 에바의 캐릭터들은 원래 철저하게 '절망과 고독을 보여주기 위해' 조작된, 안노의 애정을 눈꼽만큼도 받지 못한 불쌍한 캐릭터들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잔혹하게 안노가 캐릭터들을 다루었기 때문에, 비로소 '구원'을 이야기 할 수 있었습니다. 너희가 잘났기 때문에 너의 존재가 이곳에서 용납되는 것이 아니라, 너라는 존재 자체로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것이라는, 그러니 도망가지 말라는, 에바의 가장 핵심적인 이슈 - 그리고 그것은 당대의 오타쿠들에게 직접 다가온 것이기도 하지요 - 는 전혀 다루지 않아요. 적어도 현재까지는.

옙. 신지가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TV판의 신지는, 26화의 신지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는 말입니까?지옥의 끝에서 '나'를 발견하고 살아 돌아온 신지가, '용자왕 신지'보다도 못하단 말입니까? 저는 도저히 인정할수 없습니다.

물론 End of Eva의 충격적인 엔딩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것도 분명히 사실이지요. 인정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객기였을수도 있고, 본심이었을수도 있겠죠. 아스카는 여전히 신지와의 접촉을 꺼리고 - 리뉴얼에는 EOE에서 그게 나온 이유를 명확하게 하지요. 신지와 같은 숨을 쉬는것 조차 싫고, 그리고 그렇게 신지에게 패배한 나는 더 싫고, 그러니 기분이 나쁘고. - 신지는 신세계에서 최초로 만난 타인(아스카)의 목을 조르는, 가인과 아벨의 고사를 그대로 따르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TV판에서, 아직 안노가 예산 제약을 제외한 제정신을 가지고 있던 그 순간, 안노가 생각한건 '씨발 다 죽어 버려라'는 아니었어요. '절망의 끝에서 구원을 얻다'에 가까웠죠. 그리고 그것은, 그 아이들이 '모든것을 잃었기 때문'에 의미를 갖습니다. '긍정적인 무언가를 가장하지 않아도, 너는 이곳에 있을 수 있다.'

그런점에서 TV판을 정확하게 이어받은 캐릭터는 신지가 아니라 아스카 입니다. 신극장판에서, 아스카에게 레이가 이렇게 이야기 하지요. '너는 에바에 타지 않아도 행복해 질 수 있어.' 그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아스카는 실천합니다. 그래요. 진짜 성장한 캐릭터는 아스카입니다. 단지, 문제는, 너무 쉽게 극복해서. OTL;;; 이 이야기는, 뒤집으면 과거 TV판의 이야기는 단지 '중2병'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절망의 끝까지 가지 않아도 내가 여기 있어도, 주변과 커뮤니케이션을 해도, 문제가 없다는 거니까...

하지만 현재 아스카의 과거는 완전히 지워져 버렸지요. 어머니의 모성/타인의 인정에 대한 갈구 부분이 완전히 삭제 되었고, 그냥 단순한 츤데레로 변신;;; 이제는 극단적인 캐릭터가 없어도 된다는 걸까요? 더이상 극단의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까요?


물론 아직 Q는 개봉되지 않았고, 안노가 어떻게 우리의 뒤통수를 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은 극단적이지 않은 에바는, 평범해요. 캐릭터들이 슬픔과 고독과 절망에 묻히지 않은, 그 에바는, 평범해요. 너무나.

심지어는 에반게리온이라는 메카 자체도 그렇죠. 과거의 에바는, 극단적으로 가느다란 허리와 두꺼운 상체, 어느면으로 보나 편집증적인 기체였지요. 그렇지만 신 극장판의 에반게리온은^^;;; 무슨 중년 아저씨같은 느낌의. OTL;;; 더이상의 극단은 없다 이겁니콰.-_-;;;

신지가 행복해지는건 모두를 위해서 좋은 일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저는 극단적으로 모든것을 잃은 그 순간에 자기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신지가 모두가 LCL이 되는 세상을 거부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요. 그딴거 없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고, 저 역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캐릭터가 넘치는 이 세상에서 신지도 꼭 그런 캐릭터의 하나로 남아야 합니까? 에반게리온이라는 애니도 꼭 그래야 합니까? 극단적인 순간에서도 하나의 인간임을, 쉽게 하나되고자 하는 모든 유혹을 뿌리치는, 깨달은 자로서의 신지는 더 이상 필요 없는건가요? 고독과 절망과 쓸쓸함을 견뎌내는 인간으로서의 신지는 더이상 필요 없는건가요?


결국, 모든건 중2병에 불과하고, 중2병을 벗어난 안노에게는 그 과거가 더이상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글쎄요. 부모와의 소통, 세상과의 소통, 나 자신과의 소통에 대한 고통이 그렇게 찌질하기만 할까요... 제가 처음 에바를 보았을때(96년쯤인가요...), 지금의 학생들은 모두 부모세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지 못하는지 몰라도, 저희때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겐도의 모습에서 그것이 아버지든 세상이든 어쩐 모습을 겹쳐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텐데요... 신지가 마냥 찌질해 보이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에바 TV판을 보고, 어떤면에서는 깨달음을 얻고, 구원까지는 아니지만 어떤 희망을 보았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시 지금의 극장판은 너무나도 밝고 건전하고 평범합니다. 그래도 저는 DVD를 사고 음악을 듣고 에바 : 파를 다시 볼 것입니다만, 그러나 이렇게 밝고 건전하게 흘러가서 '제레의 음모나 파해치는' 드라마가 된다면, 더이상 '개인의 내면에 대한 극단적 바라보기'가 없다면, 저로서는 최종적으로는 실망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에바 : Q를 보고 결정을 내려야 하겠습니다만 서도...


나중에, 혹시라도 제 아이와 같이 에바를 보게 된다면, TV판을 같이 보지 극장판을 같이 보지는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현실은 둘다 같이 보거다 둘다 같이 안보거나 하겠습니다만.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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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nishi 2009/12/29 23:07 # 답글

    오덕보완계획 발동(........)
  • 병풍 A 2009/12/30 18:19 #

    ㅋㅋㅋㅋ
  • 편성국원 2009/12/29 23:13 # 답글

    그때야 안노가 성우(히다카 노리코던가?)한테 채이고 빌빌대던 시절 아닙니까. 이제 어엿한 가장(?) 인데 언제까지 찌질찌질할 순 없는 노릇이죵..;;
  • 병풍 A 2009/12/30 18:20 #

    그렇기는 합니다만. ㅋㅋㅋ
  • pseudo 2009/12/30 00:27 # 삭제 답글

    리빌드 소식이 처음 나왔을 때 이미 우려를 하고 서를 보았을 때는 포기한 부분입니다... 신판은, 그게 오타쿠들이 바라는 바와 꼭 일치하는 방향이 아니더라도, 평범하고 건전하게 끝날 거라고 봅니다. 결국 구판은 구판, 신판은 신판이 되겠지요. 그래도 20년전의 제타는 젊은 날의 객기에 휩싸여 만든 것이었고 지금의 신극이 진짜라고 헛소리를 하고 다녔던 토미노보다는 낫지 않은가 합니다. 안노가 구판은 실수였다거나 하는 식의 인터뷰를 하고 다닌 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제 정신으로 다시 보니 재미있다라고 말한 인터뷰는 좀 있더군요.
  • 병풍 A 2009/12/30 18:20 #

    토미노는 나이를 먹을수록 이상해 지고 있습셒습...
  • capcold 2009/12/30 07:02 # 답글

    !@#... 아직도, TV판의 진정한 주인공은 켄스케라고 생각하는 1인. "에바에 탑승하게 해주세요" "넌 안돼" ...전미가 울었다!
  • 병풍 A 2009/12/30 18:20 #

    주인공으로 가장 적합한 그였으나... ㅋㅋㅋ.
  • Ha-1 2009/12/30 08:37 # 답글

    결국 티비판을 리뷰하시는군요 !
  • 병풍 A 2009/12/30 18:20 #

    리뷰랄것 까지야;;;
  • 2009/12/30 14:38 # 삭제 답글

    전 TV판을 좋아했고, 사람들이 싫어했던 26화는 더 좋아했고, 그리고 옛 극장판도 좋아했기 때문인지 이번 극장판은 잘 만들었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분명 그때(TV판이 한창 인기 있었던 90년대 말)와 지금은 정서도 많이 다르고 하지만 그래도 TV판이 제게는 더 매력적입니다.
    http://pariscom.info/324
  • 병풍 A 2009/12/30 17:54 #

    저도 TV판 원리주의자고, 26화가 제일 좋았던지라. 흑흑. EOE는 마지막 한 장면에 대한 의문을 제외하면 - 여전히 신지가 왜 목을 졸랐는지 명쾌하게 해석이 안되고 있습니다. - 다 좋았는데, 신 극장판은 분명히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OTL;;
  • 길 잃은 어린양 2009/12/30 17:30 # 삭제 답글

    제가 처음으로 본 에바는 19회였습니다. 19회에서 초호기가 제르엘을 격파하는 순간과 신극장판의 같은 장면을 비교하면 신극장판 쪽이 '당연히' 화려하고 멋지지만 충격은 덜하더군요. 아무래도 신극장판의 초호기는 안광을 번득이고 짐승처럼 울부짖으면서 제르엘을 뜯어먹던 19회의 초호기만한 포스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 그래도 말랑말랑하고 행복한(???) 신극장판이 살짝 더 좋더군요. ㅋㅋㅋ. TV판의 신지는 고행끝에 깨달음을 얻는 모양새라;;;;;
  • 병풍 A 2009/12/30 18:16 #

    맞아요. 그 장면은 진짜로 공포 그 자체였죠. 물론 저는 제일 좋아했던 것은 4화에서 샴시엘을 무찌르기 위해서 신지가 비명을 지르면서 뛰쳐나가는 장면이었습니다만. ㅋㅋㅋ

    사실 신지가 그런 개고생을 꼭 해야 하는건 아니지만;;; 문제는 그런 개고생을 하는 캐릭터가 없어질 필요는 없는거 아니겠습;;;
  • 1rz 2010/10/08 21:46 # 삭제 답글

    사실 '오타쿠' 냄새가 싫어서 이글루스를 싫어하는 사람인데도 자꾸 오게 되는 이유가 님 블로그 때문인데 오늘에서야 에반게리온 카테고리가 있다는 걸 눈치챘네요. 저도 에반게리온을 한국적인(일본지상파녹화본, 더빙본) 리얼타임으로 봤던 세대인데 이 만화에 대한 제 감정은 애증과 비슷한 것이랄까요? 그 때 일본어를 알고 있었던게 죄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본 걸 후회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로는 신지가 버스나 지하철에서 타인의 시선에 움츠러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외에도 마지막회가 기억에 남습니다. 오타쿠들이 이 만화에 가장 열광했던 이유 중 하나는 신지의 외부인 적 상황과 부친에게 무시당한다는 현실 묘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친구도 없고 방에 틀어박혀 만화만 보는 오타쿠가 그 안락한 기반을 제공해주는 아버지에게 멸시당하지만 그래봐야 그는 친구도 없고 무능하고 고작 만화만 보기 때문에 저항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 증오만을 품고 있일터인데 그런 자신과 신지의 상황이 정서적인 리얼리즘이 된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신과 TV판 마지막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만 안노가 뭘 말하려고 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하다보니 그렇게 된 거 아닐까 싶습니다. 그 시기 이후 딱 몇년간 유사 오타쿠적 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그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시기가 됐네요. 만화를 보던 날 아는 사람을 보는게 싫을 정도니까요.

    오타쿠 특유의 무책임한 태도가 보이는 극장판은 지금 생각해보니 위험하단 생각도 듭니다. 자기 이해 못해주는 세상 따위 다 죽어도 좋다는 느낌이 든달까요? 오타쿠들이 도리마를 저지르는 것이 연상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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